아래 글은 1786년(정조 10년) 중인들의 시 모임인 옥계시사(송석원시사)를 결성하여 활약했던 장혼(張混, 1759년 ~ 1828년)이 남긴 서촌의 옥류동 지역에 대한 평가입니다(최종현·김창희 저, 오래된 서울, 동하, 2013, 221~223쪽에서 인용).
200여년 전에 서촌 지역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하면서 오늘날의 서촌을 보면 또 다른 느낌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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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동은 인왕산의 명승지 가운데 한 구역이다. 옥류동의 형세는 덮은 듯이 서북쪽을 숨기고 입을 벗린 듯이 동남쪽이 트여 있다. 등 뒤로는 푸른 절벽의 늙은 소나무가 멀리 바라보이고 앞쪽으로는 도성의 즐비한 집들이 빼곡하게 내려다보인다. 평평한 들판이 오른쪽에 얽혀 있고, 긴 산등성이가 왼쪽에 높이 들려 있어, 한 차례씩 오가며 마치 서로 지켜주는 것 같다. 그 가운데로 맑은 시냇물이 흘러가는데 꼬리는 큰 시내에 서려 있고, 머리는 산골짜기에 닿아 있다. 졸졸졸 맑게 흐르는 물소리가 옥구슬이 울리고 거문고와 축을 울리는 듯하다가 비라도 올라치면 백 갈래로 물길이 나뉘어 내달려서 제법 볼만하다. 물줄기가 모인 곳을 젖히고 들어가면 좌우의 숲이 빽빽하게 모여 있고, 그 위에 개와 닭이 숨어 살며, 그 사이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았다. 옥류동은 넓지만 수레가 지나다닐 정도는 아니고, 깊숙하지만 낮거나 습하지 않았다. 고요하면서 상쾌하였다. 그런데 그 땅이 성곽 사이에 끼여 있고 시장바닥에 섞여 있어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아끼지는 않았다.
옥류동의 길이 끝나가는 산발치에 오래 전부터 버려진 아무개의 집이 있었다. 집은 비좁고 누추했지만 옥류동의 아름다움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잡초를 뽑아내고 막힌 곳을 없애자 집터가 10무(1무는 30평) 남짓 되었다. 집 앞에는 지름이 한 자 반 되는 우물이 있는데, 깊이도 한 자 반이고 둘레는 그의 세 갑절쯤 되었다. 바위를 갈라 샘을 뚫자 샘물이 갈라진 틈으로 솟아났다. 물맛은 달고도 차가웠으며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다. 우물에서 네댓 걸음 떨어진 곳에 평평한 너럭바위가 있어 여러 사람이 앉을 만했다.
집값을 물으니 겨우 50관이라 그 땅부터 사놓고는 지형에 따라 몇 개의 담을 두른 집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기와와 백토 장식을 하지 않고, 기둥과 용마루를 크게 하지 않는다. 푸른 홰나무 한 그루를 문 앞에 심어 그늘을 드리우게 하고, 벽오동 한 그루를 사랑채에 심어 서쪽으로 달빛을 받아들이며, 포도넝쿨이 사랑채의 옆을 덮어 햇볕을 가리게 한다. 탱자나무 병풍 한 굽이를 바깥채 오른편에 심어서 문을 가리고, 파초 한 그루를 그 왼편에 심어 빗소리를 듣는다. (···)
홀로 머물 때에는 낡은 거문고를 어루만지고 옛 책을 읽으면서 그 사이에 누웠다가 올려다보면 그만이고 마음이 내키면 나가서 산기슭을 걸어 다니면 그만이다. 손님이 오면 술상을 차리게 하고 시를 읊으면 그만이고, 흥이 도도해지면 휘파람을 불고 노래를 부르면 그만이다. 배가 고프면 내 밥을 먹으면 그만이고, 목이 마르면 내 우물의 물을 마시면 그만이다. 추위와 더위에 따라 내 옷을 입으면 그만이고, 해가 지면 내 집에서 쉬면 그만이다. 비 오는 아침과 눈 내리는 낮, 저녁의 석양과 새벽의 달빛, 이같이 그윽한 삶의 신선 같은 정취를 바깥세상 사람들에게 말해주기 어렵고, 말해주어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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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장혼이 옥류동 계곡에 살던 친구 천수경의 집을 방문했을 때 지었던 시 한편입니다(위 책, 192~193쪽에서 인용).
천수경은 장혼과 함께 옥계시사(송석원시사)를 결성했던 중심인물입니다.
예전 내 나이 열예닐곱 때에
이곳에 놀러오지 않은 날이 없었지.
바윗돌 하나 시냇물 하나도 모두 내가 가졌고
골짜기 터럭까지도 모두 눈에 익었었지.
오며 가며 언제나 잊지 못해
시냇가 바위 위에다 몇 간 집을 지으려 했었지.
그대는 젊은 나이로 세상에서 숨어살 생각을 즐겨
나보다 먼저 좋은 곳을 골랐네 그려.
내 어찌 평생 동안 허덕이며 사느라고
이제껏 먹을 것 따라다니느라 겨를이 없었나.
싸리 울타리 서쪽에 남은 땅이 있으니
이제부턴 그대 가까이서 함께 살려네.
이 다음에 세 길을 마련하게 되면
구름 속에 누워서 솔방울과 밤톨로 배 불리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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