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양학 일반

가라지의 비유와 『주역』의 곤坤의 도

by dongmong 2018. 4. 2.

1. 태극의 의미

2. 가라지의 비유와 『주역』의 곤坤의 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정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도 존재하며, 합리적인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한 일도 있다.

어찌 보면 불의와 부조리가 그대로 방치되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이 문제에 대해 예수가 성경에서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 힌트를 준다.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을 뽑아버릴까요?’ 하고 종들이 다시 묻자 주인은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에게 일러서 가라지를 먼저 뽑아서 단으로 묶어 불에 태워버리게 하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들이게 하겠다.’

(〈마태복음〉 13장 28절~30절)

그 가라지(부조리)를 섣불리 뽑다가 밀까지 뽑을까(밀의 성장을 해칠까) 염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추수 이전의 성장기 동안에는 가라지가 밀과 함께 자라도록 그냥 둔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이와 같은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추수 때가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제 가라지를 골라내 불태워 버린다. 공동체에 존재하는 부조리가 바로잡히고 정의가 구현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은 주역에서 곤坤의 도道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추수 때’란 사계절 중 가을이며, 양기운의 절정인 여름을 끝내고 음기운을 열어가는 계절이다. 바로 곤의 도가 작용하는 시기인 것이다.

추수 때 가라지를 골라내 불태워 버린다는 예수의 말씀은, 곤의 도가 하늘의 뜻에 따라 엄정한 심판을 행한다는 사실을 잘 표현하고 있다.

곤의 도와 함께 태극을 이루는 건乾의 도는 ‘자강불식自彊不息’ 네 글자로 상징되듯 큰 것을 낳기 위해 만족할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더 많은 성취를 추구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건의 도는 만물의 성장 욕구를 풀어놓는다. 그 욕구에 최대의 자유가 부여되면서 공동체에서는 보다 빨리 성장하려는 경쟁이 벌어진다.

선의의 경쟁은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해 공동체 전체로서도 더욱 빨리 성장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그로 인해 구성원들 사이에 격차가 확대되고 소외계층이 발생하는 등 불균형이 커진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지금 우리나라의 형편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쉬운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성장기에는 공동체 내에서 여러 가지 부조리한 일들이 벌어진다. 이는 웬만한 잘못을 책망하지 않고 그대로 넘어가자 자유가 방종으로 흐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이 바로 밀밭에 가라지가 번성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가라지(부조리)를 섣불리 뽑다가 밀까지 뽑을까(밀의 성장을 해칠까) 염려되니 추수 때가 이르기 전까지는 가라지가 밀과 함께 자라도록 그냥 내버려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곤의 도 역시 마찬가지다.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순환에서 생·장生·長의 시기(건의 도가 작용하는 시기)에는 가라지가 밀과 함께 자라도록 그냥 두는 것이다. 그러다가 건의 도가 6단계의 과잉으로까지 치닫고 나면 곤의 도가 새로이 시작되면서 부작용을 치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곤의 도의 작용을 〈계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무릇 곤은 움직이지 않을 때는 날개를 접은 채 가만히 있다가, 움직였다 하면 바로잡는다. 이로써 광범위하게 낳는 것이다(〈계사상전繫辭上傳〉 6장).

夫坤 其靜也翕 其動也闢 是以廣生焉

곤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날개를 접은 채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건의 도가 작용하는 생·장生·長의 시기에는 가라지가 밀과 함께 자라도록 그냥 둔다는 말이며,

움직였다 하면 바로잡는다는 것은, 자신의 때(수·장收·藏으로 표현되는 수확기)가 이르면 가라지를 골라내 불에 태워버린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목적은 광범위하게 낳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건의 도와 곤의 도는 항상 서로 맞물려 순환하면서 태극을 이룬다(아래의 <그림 1> 참조).

동양의 옛사람들은 우리 우주가 바로 이 태극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파악했던 것이다.


<그림 1> 건과 곤의 순환



- 동양학연구소(eastology.org)

* 이 글은 강병국, 『주역독해』, 위즈덤하우스, 2017에서 발췌정리한 것입니다.

* 글의 출처가 “동양학연구소(eastology.org)”임을 밝히신다면 다른 곳에 전재하셔도 좋습니다.


'동양학 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필王弼 노자주老子注 원문(한문) 텍스트  (0) 2018.12.24
팔괘의 의미  (0) 2018.12.04
易(역)자의 어원은?  (0) 2018.08.16
『주역』 관련 출토문물 정리  (0) 2018.08.12
주역이란 어떤 책인가?  (0) 2018.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