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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 일반

주역이란 어떤 책인가?

by dongmong 2018. 3. 18.

 

‘주역周易’의 '역易'은 ‘바꾼다’는 뜻으로, 이는 ‘변화’를 의미한다.

그에 따라 《주역》을 영어로는 ‘Book of Changes’라고 쓴다. ‘변화에 대한 책’, ‘변화의 원리가 담겨 있는 책’ 정도의 의미가 되겠다.

이러한 영어 제목이 《주역》의 성격을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주역》은 '변화에 대한 책'이자 ‘변화의 원리가 담겨 있는 책’인 것이다.

(‘주역周易’에서 ‘주周’는 ‘주周나라'를 뜻한다고 보기도 하고, ‘두루 주周'로 보기도 한다. ‘주周나라의 역易’ 또는 ‘두루[周] 적용되는 보편적인 역易’이라는 말이 되겠다).

 

그럼에도 《주역》을 단지 ‘점占치는 책’으로만 생각하는 경우를 꽤 보게 된다.

《주역》은 고대의 ‘점인占人’들이 남긴 기록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점치는 과정에서 수천 년에 걸쳐 인간 사회에 나타나는 각종 변화를 관찰했고, 그 결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그 과정에서 점인들은 인간과 인간 사회가 변화하는 원리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역》이 담고 있는 텍스트는 인류의 집단지성이 도달한 변화의 원리에 대한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주역》의 성립과정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주周나라의 관직제도를 규정한 《주례周禮》는 점인占人, 즉 점 보는 사람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고대에는 점 보는 사람인 점인 역시 관직이 주어진 정식 관료였으므로,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①②          ③ ④

凡卜筮既事則  繫幣以比其命 歲终則計其占之中否(《周禮》, 春官 占人)

범복서기사즉  계폐이비기명 세종즉계기점지중부

무릇 거북점과 시초점을 치고 나면, (기록을 남겨) 비단에 매어둠으로써 그 물었던 내용을 나란히 정리해두는 것이다. 한 해가 끝나면 그 점이 적중했는지 여부를 집계한다.

①卜 점 복, 거북이의 껍질을 가지고 치는 거북점

② 筮 점 서, 산가지를 가지고 치는 《주역》점

③ 繫 맬 계

④ 比 나란히 하다 비, 여기서는 ‘줄을 세우다’는 의미로 쓰였다

 

 

위 규정에 대해 후한後漢 때의 학자 정현(鄭玄, 127년 ~ 200년)이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아 보충설명함으로써 우리의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① ②

既卜筮  史必書其命龜之事及兆於策  繫其禮神之幣而合藏焉

기복서  사필서기명구지사급조어책  계기례신지폐이합장언

거북점과 시초점을 치고 나면, 사관은 필히 거북점에 물었던 일의 내용과 (나타난) 조짐을 대쪽에 기록해둔다. 그것을 신神에게 예禮를 올리는 비단에 매어 함께 보관하는 것이다.

① 命龜 거북점에 묻다

② 策 대쪽 책, 종이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종이 대신 쓰였던 대나무 쪽을 이른다.

 

 

이를 보면 점을 치고 나서 점친 기록을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점에 물었던 일의 내역과 아울러 그 점을 쳤을 때 나타났던 조짐, 즉 점을 쳤을 때 나왔던 대답(길하다, 흉하다 등)을 함께 기록해서 비단에 매어 보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 해가 끝난 시점에 결과가 나온 점에 대해 적중했는지 여부를 집계했던 것이다.

 

결국 1년이 지나서 점친 결과가 나오면 틀린 것은 모두 내다버렸지만, 들어맞은 점은 나중에 다시 참고하기 위해 남겨두었다. 이 과정을 매년 되풀이했고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결과 지금 우리 손에 들려 있는 텍스트가 바로 《주역》인 것이다.

 

그 과정 동안 점인들이 기울인 노력이 어떤 것이었는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은殷나라(기원전 1600년경~기원전 1046년경)에서는 천자가 바로 점인 집단의 우두머리였다. 은왕조에 복속된 여러 읍국邑國(고대의 도시국가)들은 자신들의 점인을 은나라의 수도로 파견했다.

은나라의 천자는 이들 점인 집단의 우두머리가 됨으로써 여러 읍국들이 친 점에 대한 유권해석을 내렸고, 이를 통해 정신적인 지도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점령占領’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은나라의 제도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점령占領’을 글자 그대로 풀어보면 ‘점占으로 영도한다’는 뜻인데, 은나라의 제도를 생각하면 이와 같은 단어가 어째서 ‘어떤 지역을 정복한다’는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

즉 은나라 천자는 정복국들을 ‘점占으로 영도했던’ 것이며, 따라서 천자의 권위와 지도력은 점에 대한 해석이 정확해야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은나라는 점의 예측력을 높이기 위해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이집트의 제사장들이 천문 관측을 통해 나일 강의 범람 주기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에 최고 권력자가 됐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고대의 동아시아 역시 비슷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夏왕조(기원전 2070년경~기원전 1600년경)의 개창자인 우 임금의 사례를 보면, 황하의 치수사업을 성공시킴으로써 천자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반면 그의 아버지 곤은 치수사업에 실패해서 목이 달아났다. 그렇다면 우는 어떻게 치수사업을 성공시켰을까?

 

필자는 그가 이집트의 제사장들처럼 황하의 범람 주기를 계산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언제 물이 불어나는지 또는 잦아드는지를 알면 쉽게 물을 다스릴 수 있다. 이처럼 우 임금 역시 황하의 범람 주기를 정확히 예측해냄으로써 권력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한다.

 

하왕조의 뒤를 이은 은왕조에서 천자가 점인의 대표자였다는 사실은, 이러한 전통(예측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천자의 권위가 확립된다고 하는)이 계속 이어졌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천자가 우두머리가 되어 이끄는 점인 집단이 그저 가만히 앉아서 수동적으로 점만 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천문 주기와 강의 범람 주기를 계산했을 것이고, 가상적국에 대한 온갖 정보를 수집했을 것이다. 결국 고대의 점인집단은 일종의 싱크탱크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점인이 권력을 획득하는 고대의 시스템이 ‘비과학적’이라고 느낀다면 오산일 수 있다. 왜냐 하면 오늘날에도 사정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예전 점인들의 역할을 계속 이어서 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제학자와 정부 관료들이 바로 그들이다.

 

예를 들어 재정경제부 장관을 보자. 재경부장관은 매년 초가 되면, 금년의 경제성장률은 몇 %쯤 될 것이라고 점친 결과를 발표한다. 한국은행 총재 역시 그러하다. 얼마 전에 한은 총재는 앞으로 우리나라의 경제 사정이 나빠질 거 같다면서 성장률 전망치(점친 결과)를 0.3%포인트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점친 결과가 들어맞으면 그들은 영전할 것이다. 재경부 장관이 점을 잘 쳐서 인기를 얻으면 국무총리도 되고 대통령도 되고 한다.

경제학자인 조순 교수는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 후보로 나선 적이 있고, 정운찬 교수 역시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 후보로 거명되기도 했다.

요즘 유럽 각국의 총리나 수상은 경제학자들이 맡는 경우가 많다.

 

특히 미국 연준의 총재는 대통령을 능가하는 세계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다. 미 연준의 총재가 어떻게 그런 권력을 갖게 되었을까? 그린스펀Alan Greenspan 같은 경우는 전 세계를 들었다 놨다 했는데, 그는 무엇을 통해 그와 같은 권력을 획득했을까?

 

점치는 능력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금년은 경기가 좋을 것이다. 실업률이 떨어질 것이며, 주식 가격은 오를 것 같다.’ 이런 점이 딱딱 들어맞으면서 전 세계가 열광했다. 그의 권력은 미국 대통령보다 커졌다. 그린스펀의 뒤를 이은 버냉키Ben Bernanke 역시 경제위기 와중에도 비슷한 권력을 유지했는데, 옐런Janet Yellen으로 오면 권력의 카리스마가 약간 떨어진다. 그 이유는 옐런의 점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고 의심을 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들은 ‘현대’라는 시기가 과거 은나라 시절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은 ‘예측’의 정확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점인들(경제학자와 정부 관료들, 중앙은행 등)은 자신들이 내놓는 점의 예측력을 높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그와 꼭 마찬가지로 과거의 점인들도 자신들이 내놓는 점의 예측력을 높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그와 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점친 결과를 체계적으로 모아나갔다.

결과가 계속 쌓이다 보니 비슷한 내용끼리 모아서 관리했는데, 그렇게 오랜 세월을 반복해나가는 와중에 점친 결과가 총 64개의 분류로 모아져 나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이 64개의 분류 패턴 중 어느 하나에 속한다는 얘기가 된다.

 

또한 점인들은 각 분류에 속하는 여러 점들을 체계적으로 배열하는 과정을 통해, 어떤 분류의 변화든지 여섯 단계의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해간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64개의 변화 패턴 모두가 각각 여섯 단계의 과정을 거쳤던 것이다.

 

그에 따라 오늘날 우리 손에 들려있는 《주역》 텍스트는 64개의 변화 패턴(흔히 64괘卦로 불린다)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각의 변화 패턴은 여섯 단계(이를 6효爻라 부른다)를 거치면서 진행되어 나간다.

이와 같이 각각의 변화가 여섯 단계를 거치며 진행될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나는 그러한 변화의 와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주역》의 성립과정을 보면, 《주역》이 오랜 세월 동안 인류의 집단지성이 집단학습collective learning을 통해 축적해온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인류가 수천 년의 세월에 걸쳐 쌓아올린 지적 유산인 셈이다.

 

게다가 《주역》은 변화(易, change)의 원리를 집요하게 추구한 결과물이다. 변화는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는가, 변화는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는가, 나는 그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통찰이 그 안에 담겨 있다.

 

현재가 ‘변혁의 시대’라는 사실에 누구나 동의한다.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주역》을 읽을 때라고 할 수 있다. 《주역》은 변화의 원리를 담고 있는 책이며, 인류의 집단지성이 집단학습을 통해 도달한 근원적인 통찰을 담고 있는 책이기에, 다른 어느 때보다도 ‘변혁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가 《주역》으로 점을 친다는 것은, 어떤 변화에 휩쓸린 사람이 자신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변화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어 갈지를 알고 싶어서 점을 치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식을 보면, 현재 진행되는 변화가 64개의 변화 패턴 중 어느 것에 속하는지, 그리고 그 패턴 중에서도 몇 번째 단계에 놓여 있는지를 무작위로 뽑아보는 것이다. 이를 알게 되면 그 다음 단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역》이 담고 있는 64가지 변화 패턴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굳이 점을 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내가 처한 상황이 64가지 패턴 중 어느 것에 속하는지를 직접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패턴 중에서도 몇 단계 쯤에 놓여있는지 역시 직접 판단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해당 단계를 설명한 구절을 찾아보면 “~면 흉할 것”이라는 등의 내용이 나온다. 이처럼 《주역》은 ‘길흉吉凶’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보면, 무기력하게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이라 말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주역》 스스로가 “길흉회린은 행동으로부터 생겨나는 것吉凶悔吝者 生乎動者也”(「계사하전繫辭下傳」 1장)이라 말하고 있다. 내가 적극적으로 행동하면 흉한 결과를 피할 수 있고, 길한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주역》은, 다음 단계에서 변화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서술해놓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가 몇 단계 쯤에 놓여있는지를 내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면, 다음 단계에 진행될 변화의 추세에 미리 유념할 수도 있게 된다.

결국 예로부터 《주역》을 잘 알수록 점을 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최근 사회적으로 ‘인문학人文學’을 읽어야 한다는 자각이 꽤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아마도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그동안 축적한 경험적 지식(사회과학)으로는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 근본적인 것이기에, 다시 기본(인간 자체에 대한 지식, 즉 인문人文)으로 돌아가 살펴봐야겠다는 자각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는 필자와 같은 인문학도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인문학 바람의 영향으로 동양의 고전 역시 조금쯤은 주목받고 있기에 더욱 반갑다.

그런데 이처럼 동양 고전이 주목받는 분위기 속에서도 정작 변화의 원리를 밝혀놓은 《주역》이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 때문에 필자는 지금까지 ‘변화의 원리’라는 관점에서 《주역》을 소개했다.

하지만 필자가 여기서 《주역》에 대한 소개를 끝내버린다면 이는 《주역》의 성격을 상당히 곡해하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주역》은 단지 변화에 대응한다고 하는 실용적인 목적으로만 쓰이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문학人文學’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문文·사史·철哲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동양 고전 중에 문文·사史·철哲에 대응하는 것이 바로 ‘삼경三經’이다. 시경詩經은 문학책이며, 서경書經은 역사책이다. 그리고 역경易經이 바로 철학책이다. 이처럼 《주역》은 기본적으로 철학을 담고 있는 인문학 책인 것이다.

 

서양의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경전인 바이블Bible에서 자기 철학의 근원을 끌어낸다. 헤겔은 요한복음 12장 24절~26절을 일러 ‘나의 성경’이라 했고, 키엘케고르는 마태복음 16장 24절~26절을 일러 ‘나의 성경’이라 했다. 해당 구절이 자신들의 사상을 절묘하게 함축하고 있다는 말이다.

 

동양의 철학자들도 이와 유사하게 자신들의 경전, 즉 《주역》에서 자기 철학의 근원을 찾았다.

주희는 회암晦庵이라는 호를 스스로 지어서 명이明夷괘를 자신의 《주역》으로 삼았고, 서경덕은 복재復齋라는 호를 스스로 지어서 복復괘를 자신의 《주역》으로 삼았다.

조식은 《주역》 「계사전繫辭傳」의 ‘궁즉통窮則通’ 세 글자를 자신의 《주역》으로 삼아 안연顔淵의 도를 본받고자 했다.

 

근현대로 와서는 고광순 의병장(1848~1907)이 복復괘에 있는 ‘불원복不遠復’ 세 글자를 자신의 《주역》으로 삼았고, 신영복은 박剝괘에 있는 ‘석과불식碩果不食’ 네 글자를 자신의 《주역》으로 삼았다.

《주역》이 담고 있는 ‘불원복不遠復’ 세 글자는 의병장에게 죽음을 각오하고 불의에 맞서 싸우는 철학적 기반이 되었고, ‘석과불식碩果不食’ 네 글자는 신영복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힌 20년 세월을 견디면서 영롱한 진주를 빚어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구체적인 내용은 해당 괘 참조).

 

이처럼 《주역》을 읽다보면 누구나 특별한 울림이 있는 구절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이 책을 읽고 그러한 울림을 느낄 수 없다면, 그건 필자의 필력이 부족해서 《주역》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역》의 64괘는 인간 세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다루고 있어서 그 범위가 방대하기에, 특히 어느 괘의 어느 구절이 각자에게 울림으로 다가갈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님께서도 《주역》이 전하는 메시지(이는 수천 년 전의 점인이 님에게 전하는 메시지라고도 할 수 있다) 중에서 특별한 울림이 있는 구절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이처럼 《주역》은 다분히 실용적인 목적으로도 읽을 수 있고, 삶을 지탱하는 철학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는 《주역》이 그만큼 풍성한 통찰을 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와 같은 통찰은 수천 년이라는 시간의 축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 인류가 수천 년의 세월에 걸쳐서 쌓아올린 지혜가 바로 《주역》이다. 이 독특하고 멋진 책에 접해볼 것을 권해드린다.



- 태극사상연구소(hansasang.org)

 

 

 

* 이 글은 강병국, 『주역독해』, 위즈덤하우스, 2017에서 발췌정리한 것입니다.

* 글의 출처가 “태극사상연구소(hansasang.org)”임을 밝히신다면 다른 곳에 전재하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