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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 일반

팔괘의 의미

by dongmong 2018. 12. 4.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 그러한 즉 성인의 뜻 그조차 나타낼 수 없음에랴! (이에) 성인이 상象을 세움으로써 뜻을 다하신 것이다.

書不盡言 言不盡意 然則聖人之意 其不可見乎 聖人 立象以盡意

(<계사상전> 12장)



문자언어(글)는 선형적이어서 뚜렷하다. 뚜렷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상象이 담은 뜻을 다 담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상象이 담은 뜻을 왜곡해서 가리킬 위험도 있다. 그 때문에 괘상卦象이 중요한 것이다. 괘상을 읽음으로써 괘효사가 다하지 못한 뜻을 읽을 수 있다.

아래에서는 8괘의 속성을 문자언어로 풀이하는 시도를 해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문자언어로 고정시키는 순간 그 즉시 상象이 담은 뜻을 다 담지 못하며, 그 뜻을 왜곡하는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象은 상象 자체로 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계속해야 한다



<표 5> 팔괘의 속성




빌헬름이 그의 책 도입부에서 적절히 지적했듯이, 8괘는 끊임없이 서로 간에 이행移行한다. 하나가 다른 하나로 바뀌는 것이다. 이러한 이행移行의 기본은 <그림 32>와 같은 배치순서에 따라 이행移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배치순서에 따른 이행移行을 염두에 두고

8괘의 의미를 음미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림 32> 팔괘 배치도



또한 빌헬름이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8괘는 계속해서 이행移行되는 변화 중의 한 상태를 표상하는 상징이지, 한 사물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건乾을 하늘[天], 곤坤을 땅[地], 감坎을 물[水]이라고 하는 식의 설명은 옳지 않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건乾


건乾의 속성은 강건함[健]이다. 군자는 자기 확신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펼쳐나간다. 이는 ‘자강불식自彊不息’ 네 글자로 표현된다. 스스로 굳세게 힘을 쓰며 그칠 줄을 모른다. 왜 그럴까? 생장生長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군자가 품은 뜻, 그의 이상과 신념을 실현시키기 위한 것이다.

건의 길에서는 군자의 자기주장이 세 번 연속으로 지속되므로, 자신의 주장을 실현시키는 데에는 최고의 성과를 달성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무리가 따른다. 건의 3효에서는 위기가 발생하곤 한다. 그러므로 이에 잘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괘전>은 건의 속성을 ‘戰(싸움 전)’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건의 길을 갈 때는 싸울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8괘의 건을 상하로 중첩시킨 대성괘 건은 통행본 《주역》에서 1번에 배치되어 있다. 대성괘 건의 설명이 8괘의 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손巽


손巽의 속성은 자기주장을 굽히고 들어가는[入] 유연한 대응이다. 군자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일을 성사시키기 위한 것이다. 일을 성사시킴으로써 자신의 명命을 펼치기 위해서는 대세를 따름으로써 순풍을 받으며 일을 해나가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손의 길은 ‘수풍隨

風’(바람을 따름)이라 요약할 수 있다.

손의 1효는 음으로 ‘응축’이다. 이는 대세에 맞추어 양으로 표상되는 자기주장(팽창)을 유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유보이며, 2효부터는 자기주장을 회복한다.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1효에서는 군자가 양보했고 2효에서 군자가 처음으로 자기주장을 내세운 것이므로 상대는 2효에서는 별다른 불만 없이 받아들인다. 이후 3효에서 군자의

자기주장이 계속되면 상대의 불만이 고개를 들게 되지만, 상대는 3효까지는 자신의 불만을 억제하면서 군자의 뜻을 그대로 따라간다. 이는 건乾의 3효에서 위기가 촉발되는 것과는 다른 진행이다.

대성괘 손은 통행본 주역에서 57번에 배치되어 있다. 대성괘 손의 설명이 8괘의 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감坎


감坎의 속성은, 자기 확신이 혼란에 빠지는 것[陷]이다. 대신 혼란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군자는 자신을 성찰하게 되며 이를 통해 자기 확신이 더욱 옹골차게 된다. 시련을 통해 단련이 되는 셈이다. 이는 감괘의 중앙 양효가 그 위아래에 있는 음의 응축 작용으로 단단하게 여무는

상으로 표상되고 있다.

감의 물상物象이 수水인 이유는, 오행 중 수水의 덕목이 지智로서 응축을 통한 자기성찰에 해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감의 괘상에서 1효의 음은 자기 확신이 혼란에 빠짐을 표상한다. 2효의 양은 혼란을 거친 후 도달하는 성찰이며, 자기 확신이 옹골차게 됨을 표상한다. 3효의 음은 옹골차진 자기 확신이 재차 혼란에 직면하는 상황을 표상한다. 1차의 혼란을 거치며 단단해졌기에 2차 혼란에서는

대응 양상이 1차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대성괘 감은 통행본 《주역》에서 29번에 배치되어 있다. 대성괘 감의 설명이 8괘의 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간艮


간艮의 속성은 자기 자리를 굳게 지켜 머무르는 것[止]이다. 군자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우선 상황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불리한 여건에 놓였을 때 산처럼 흔들리지 않고 굳게 버팀으로써 최소한의 자기 입지를 확보해내는 것이 간의 길이다.

간의 괘상에서 1효와 2효의 음은 상대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고 굳게 버티는 과정을 표상한다. 이렇게 연속해서 굳게 버팀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확보해내는 것이다. 불리한 여건이므로 이 때 군자가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고 하는 최소한의 것이며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간은 2단계까지 굳게 버팀으로써 2단계에서 이러한 핵심가치를 확보한다. 이후 3단계에서는 상대의 요청을 조금 들어준다(이마저도 거부하면 간艮이 아니라 곤坤이 된다). 3단계에서 주의할 점은 핵심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대성괘 간은 통행본 주역에서 52번에 배치되어 있다. 대성괘 간의 설명이 8괘의 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곤坤


곤坤의 속성은 순명順命하는 것이다. 순명하는 사람은 천명天命(진리)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수용한다. 곤의 속성을 ‘공감’, ‘수용’으로 표현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이다. 순명順命한다는 것은 자기를 버린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기를 버리고 천명(진리)에 헌신하게 될 것이다. 곤의

속성을 ‘헌신적’이라 표현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이다.

곤의 물상이 ‘대지[地]’인 이유는, 이처럼 곤이 자기를 비운 채 천명(진리)에 대해 공감하고 수용하며 헌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곤의 길은 이처럼 자신을 버리는 길이기에 순명할 대상에 대한 확신이 생길 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은 당연하다. 천명임을 납득할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이며, 납득한 다음에는 순명하며 헌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사람들을 곤坤의 길로 이끌려는 상황이라면, 천명임을 납득시키기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하며, 이에는 시간이 걸리므로 인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대성괘 곤은 통행본 주역에서 2번에 배치되어 있다. 대성괘 곤의 설명이 8괘의 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진震


진震의 속성은 동動하게 하는 것이다. ‘동動하다’는 말은 ‘회가 동하다’라고 할 때의 ‘동하다’에 해당한다. 빌헬름은 진의 속성을 ‘선동적인 움직임inciting movement’이라 정의했는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군자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사람이 기존의 믿음·신념·가치체계로 마음이 굳어있을 경우 그 마음을 움직여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세상이 영원히 불변할 수는 없다. 진震은 어떻게 해야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처음에 놓인 양효는 전광석화처럼 강렬한 움직임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상황을 표상한다. 그 다음에 오는 2효와 3효의 음은 그러한 새로운 움직임을 거두어들여 여운을 남기는 상황을 표상한다. 진震은 이렇게 해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하려면 2·3효의 음으로 표상되는 여운이 핵심이라는 얘기다. 이는 사람의 마음이 방어적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해서 기존의 믿음·신념·가치체계로 굳어있는 마음을 흔들어놓는 것인데, 이를 우레[雷]의 물상에 비유한 것이다. 우레는 강렬한 충격을 주고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지기에 강렬한 인상이 남는 것이라 해석하는 셈이다.

진의 괘상에서 1효는 기존의 흐름에서 탈피한 새로운 움직임(생각, 사조)을 표상한다. 그에 비해 2·3효는 새로운 움직임을 유보시키고 기존의 흐름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괘는 새로운 사조의 등장과 기존의 익숙한 전통이 공존하는 상황을 표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성괘 진은 통행본 주역에서 51번에 배치되어 있다. 대성괘 진의 설명이 8괘의 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리離


리離의 속성은 규범을 확립하고 그 규범에 따르는[麗] 것이다. 규범이란 개인이나 공동체가 삶 속에서 구체적인 가치 판단의 문제에 부딪힐 때 의지하며 살아가는 행동규범(당대의 진리)을 말한다. 8괘가 진震에서 리離로 이행移行한다는 것은, 진震에서 싹을 틔운 새로운 생각이 기존의 규범과 역동적인 균형 상태에 이를 만큼 발전했음을 의미한다.

리의 물상이 불꽃[火]인 이유는 대성괘 리離(30)의 서두에서 설명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괘상으로 보면, 리離의 가운데에 있는 음효가 규범력을 발휘하는 당대의 진리에 해당한다. 1·3효의 양은 규범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실생활 중의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들이다. 가운데에 있는 음효는 이러한 여러 시도들에 대해 규범력을 발휘한다. 이는 장작이 불꽃을 붙들어주듯 가운데 음효가 발산하려는 좌우의 양효를 붙들어주는 모습으로 표상되고 있다. 달리 보면 이는 당대의 진리가 구체적 상황을 만나 자신을 주장(적용)하면서 외부로 발산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1·3효의 양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불꽃이며, 당대의 진리가 발하는 광휘요 광명에 해당한다.

일의 진행 경과로 보면 1효의 양은 공동체에서 새로운 시도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짐을 표상한다. 2효의 음은 계속 확장해나가려는 그 새로운 움직임을 멈추고 응축함으로써 공동체의 규범을 단단하게 다지고 옹골차게 만드는 움직임을 상징한다. 이후 3효의 양은 그렇게 다져진 규범을 바탕으로 다시 새로운 시도를 이어나간다.

군자(의 공동체)가 리離의 길을 밟아나간다는 것은, 이러한 규범을 확립해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대성괘 리離는 통행본 주역에서 30번에 배치되어 있다. 대성괘 리離의 설명이 8괘의 리離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태兌


태兌의 속성은 벗어남[說](벗어날 탈)이다.

앞서 살펴본 리離의 괘상은 규범(당대의 진리)이 변화하는 현실에 대해 규범력을 발휘하는 모습인데, 이를 거꾸로 현실의 입장에서 보면 규범에 의해 구속을 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규범과 현실은 끊임없이 서로 갈등하면서 균형을 이루는 긴장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

런데 개인이나 공동체가 성장을 이룰 경우 기존에 잘 작동하던 규범이 더 이상 맞지 않는 옷이 될 수 있다. 이제는 기존의 규범이 공동체를 구속하는 한계로 작용하는 측면이 더 커지는 것이다. 태兌는 이처럼 규범이 더 이상 맞지 않는 옷이 되어 현실을 가두는 한계로 작용할

때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벗어날 경우 당대의 진리(규범)는 더 이상 규범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과거의 진리가 된다.

괘상으로 보면 1효와 2효의 양은 기존 규범을 넘어서는 자기주장을 상징하고, 3효의 음은 자기주장을 유보하고 기존 규범을 존중하는 태도로 복귀함을 상징한다. 이 점에서 이행移行의 순서상 다음에 오는 건乾의 ‘자강불식自彊不息’과 구별되는 것이다.

태兌의 전형적인 상황은 스승에게 배움을 마친 제자가 하산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하산한 제자는 이제 스승과 도반道伴으로 관계를 재설정하게 된다. 스승의 규범력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스승에게 안하무인의 태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태괘3 효의 음은 이러한 취지라고 할

수 있다.

태兌의 속성에 대한 기존 통설은 기뻐함[說, 기쁠 열]으로 새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벗어남[說, 벗어날 탈]으로 새기는 것은 필자의 주장이 통설과 크게 다른 부분이다. 필자가 이렇게 새기는 이유는 대성괘 태兌(58)에서 상세히 설명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여기서는 8괘의 음양 소장消長 관계를 살핌으로써 설명을 보강하고자 한다. <그림 32>에서 보면, 3개의 음효로 상징되는 곤坤의 순명順命하던 태도가 진震에 이르러 새로운 생각(1효의 양)의 가능성에 눈을 뜨고, 이후 리離에 이르면 새로운 생각과 규범이 균형을 이루며, 태兌에 이르면 이제는 한계로 작용하게 되는 기존 규범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후 건乾에 이르면 자강불식하며 본격적으로 자기를 주장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흐름은 8괘의 음양이 소장消長하는 상과 부합하고 있다.

또한 태괘 자체의 상을 보면, 밖에 놓인 1음이 안에 있는 양을 둘러싸고 응축시키려 하지만, 안에 있는 양이 이미 2양으로 자라났기에 1음으로써는 힘에 부쳐서 양기운을 가두어두지 못한다(이 점에서 태兌가 진震과 구별되는 것이다). 결국 양기운이 음기운의 응축하는 힘을 뚫고 ‘벗어나는’ 것이다. 리離의 경우는 가운데 자리잡은 1음이 밖으로 발산하려는 좌우의 양을 붙들어줌으로써 통합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1음이 건전한 규범력을 발휘하는 상태를 표상한다. 반면 태兌에서는 3효에 놓인 1음이 상승하려는 2양을 가로막고 있다. 이는 1음이 건전한 규범력을 상실하고 도리어 한계로 작용하는 상태를 표상한다.

이처럼 괘상을 통해 태兌가 ‘벗어남’을 뜻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기존의 견해처럼 태兌를 ‘기뻐함’으로 새길 경우는 괘상과 부합하지 않는다.

태의 물상이 못[澤]인 이유는 무엇일까? 《주역》에서 대천大川은 그 거센 물결에 휩쓸리면 사고를 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대상이다. 그 물결의 거센 흐름은 인간에게는 불가항력의 대상이어서 일방적으로 그 영향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대천은 주역의 세계인 읍국 공동체의 경계요, 한계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못[澤]은 그러한 대천大川이 가두어진 것이다. 이처럼 대천이 가두어지면 인간은 이제 그 거센 흐름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며, 그 물은 더 이상 읍국 공동체의 한계로 작용하지 못한다. 그리고 대천이 가두어진 못은 오히려 인간에게 유익함을 주는 존재가 된다. 그 때문에 고대에 못은 이익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존재로 인식되었고,48 오늘날에도 ‘윤택潤澤, 혜택惠澤, 덕택德澤’과 같은 단어들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의 물상이 못인 이유는, 대천을 가두어 못으로 만듦으로써 대천의 거센 흐름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 거센 흐름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후 못으로부터 윤택함을 얻는 것은, 하산한 제자가 스승과 도반道伴으로 관계를 재설정함으로써 그 관계로부터 유익을 얻는 것과도 닮았다.



•이상으로 오류의 가능성을 무릅쓰고 8괘의 속성을 문자언어로 풀이하는 시도를 해보았다. 역시 글은 상象을 다할 수 없음을 절감할 수 밖에 없다. 필자가 적어본 글은 8괘의 상象이 담고 있는 의미를 다 담지 못했음을 밝혀둔다.

8괘의 이행移行에 초점을 맞춘 서술이 8괘의 취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그렇게 초점을 맞추어 서술한 측면도 있다. 그러므로 필자의 서술을 일별했다면 그 다음은8 괘의 상象을 상象 자체로 보아주실 것을 거듭 당부 드린다.

주역의 64괘는 결국 8괘로 이루어졌으므로 8괘의 속성을 통해 64괘를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3효와 6효에서는 위기와 과잉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해당 8괘의 취지에 어긋나는 경우에 발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동양학연구소(eastology.org)



* 이 글은 강병국, 『주역독해(하경)』, 위즈덤하우스, 2017의 <부록 2>에서 발췌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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