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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고흐, 루벤스와 『주역』의 소휵小畜괘

by dongmong 2018. 4. 4.

주역의 9번째 괘인 ‘소휵小畜’은 굴레를 씌워 길들이는 원리이면서 동시에 작은 부富를 이루는 원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큰 부富를 이루는 원리는 26번째 괘인 ‘대휵大畜’에 해당한다).

여기서 굴레를 씌워 길들여져야 하는 대상은 우리 모두이다. 인간은 누구나 사회적 동물이어서 ‘공동체’를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공동체에 속해서 타인과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려면, 일정 부분 굴레를 받아들여서 길들여지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자유를 희구하는 인간 존재가 속박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모순적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모순을 어떻게 소화하고 조화시킬 것인가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공자孔子는

사람이 신뢰할 수 없다면, 그가 무엇이 가능한지 알 수 없는 법이다. 큰 수레에 소의 멍에걸이가 없고 작은 수레에 말의 멍에걸이가 없다면, 수레가 무엇으로써 굴러갈 수 있겠는가?

子曰 人而無信 不知其可也 大車無 小車無 其何以行之哉

(《논어論語》 위정爲政 22장 1절)

라고 설파한 바 있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인간이 어디서나 굴레에 매여 있다고 했고,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는 《어린왕자》에서 ‘길들여짐’을 화두로 삼기도 했다.

주역의 소휵小畜은 바로 이와 같은 인류의 영원한 고민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소휵小畜의 도에서 흥미로운 점은, 굴레를 씌워 길들이는 원리와 작은 부富를 이루는 원리를 같은 것으로 본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는 작은 부富를 이루려면 자신의 ‘야생성’에 굴레를 씌워 길들여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 명리학命理學에도 이와 비슷한 관념이 존재하기에, 이는 동양학 전반의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명리학에는 재성財星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이 지닌 여러 특성 중 ‘재財’를 곧잘 만들어내는 속성이 재성이다. 재財는 재물財物, 재산財産을 포함하는 개념이니, 재성은 부富를 곧잘 일구는 속성인 셈이다.

그런데 명리학은 인간의 재성이, 자기가 갖고 있는 맹목적 에너지인 식상食傷을 길들였을 때 만들어진다고 설명한다.

맹목적으로 뿜어져나오는 에너지는 인간의 야생성이라 할 수 있다. 이를 길들인다는 것은 굴레를 씌운다는 말이며, 이렇게 했을 때 재성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누구는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은데도 곧잘 재財를 만들어내는 반면, 누구는 아주 열심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통 재財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열심히 하는 것’은 맹목적 에너지인 식상食傷에 해당하며, 이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갖추고 있는 야생의 에너지다. 이에 굴레를 씌워 길들여야 재성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굴레’란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람이 재성을 갖추었다는 것은, 자신이 지닌 야생의 에너지를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어 구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고흐는 천재적인 화가였다. 이는 그가 엄청난 식상食傷의 에너지를 갖추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의 그림을 거의 팔지 못했다. 재성이 약했던 것이다.


그는 굴레(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갇히기를 거부했던 사람이다. 그 결과 천재적인 그림들을 남길 수 있었지만, 재財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자신이 갖춘 막대한 에너지의 폭주를 제어하지 못해서 나중에는 자기 귀를 스스로 자르기도 하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해바라기>


반면 루벤스 같은 이는 같은 화가이면서도 고흐와 대조를 이룬다.

당대 유럽 전역의 국왕과 귀족들이 루벤스의 그림을 사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그는 재성을 갖춘 사람이었고, 자신의 재능을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어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개인이 작은 부富를 이룰 수 있는 원리(소휵小畜의 도)의 요체는,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굴레)과 적절하게 타협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소휵小畜의 도는 짧은 일곱 줄의 문장으로 이루어졌는데,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여러 이야기를 ‘동시에’ 하고 있다.

이런 점이 《주역》 텍스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주역》의 메시지를 책에다 가둘 수 없다는 말은 이 때문이다.

여러 이야기를 동시에 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마다, 또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메시지가 달리 읽히는 것이다.

소휵小畜의 도는 짧은 일곱 줄의 문장을 통해 인간 존재에 내재한 자유와 구속의 갈등, 이를 통해 인간 공동체가 굴러가는 원리에 대해 말할 뿐 아니라, 작은 부富를 이루는 원리까지 동시에 말하고 있다.

- 동양학연구소(eastology.org)

* 이 글은 강병국, 『주역독해』, 위즈덤하우스, 2017에서 발췌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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