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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소음인이 쓴 시, 보들레르의 여행(악의 꽃)

by dongmong 2023. 10. 18.

 

보들레르의 여행(악의 꽃)은 소음인이 쓴 시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감에 사로잡혀서 언제든 심연으로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는 소음인의 성정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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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지도와 사진을 사랑하는 아이에게

우주는 그의 광대한 입맛 만큼이나 넓다

아! 램프의 빛에 비친 세상은 얼마나 큰가!

돌아보는 눈에는 세상이 얼마나 작은가!

 

어느 아침에 우리는 떠난다, 머릿속은 불꽃으로 가득하고

마음은 원한과 쓰라린 욕망으로 무겁다

그리고 우리는 파도의 리듬을 따라 간다

우리의 무한을 바다의 유한 위에 흔들면서

 

......

 

망보는 사람이 가리키는 섬들은 모두

운명이 약속한 하나의 엘도라도 ;

우리의 상상력은 요란한 난교 파티를 펼치는데

아침 햇살에 발견한 것은 암초일 뿐

 

......

 

나이 든 방랑자처럼, 우리는 진흙탕을 밟으면서도

콧대는 하늘을 향하고, 빛나는 파라다이스를 꿈꾼다

그의 마법에 걸린 눈은 카푸아(풍요한 도시)를 발견한다

촛불 하나가 누추한 판잣집을 밝힌 것만 보더라도

 

......

 

우리는 별을 보았고

파도도 봤어요; 우리는 모래도 보았죠

그리고 많은 충격을 겪었고, 예기치 못한 재난도 겪었지만

우리는 여기에서처럼 대부분 지루했어요

 

......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들, 가장 웅장한 풍경들도

가끔씩 우연이 구름으로 빚어내는

그 신비한 매력 만큼의 것을 담고 있지 못했죠

그래서 항상 욕망은 우리를 조바심나게 했어요!

 

......

 

우리는 실수로 우상에게 경의를 표하기도 했고

빛나는 보석이 별자리처럼 박힌 왕좌에 경의를 표하기도 했고

당신네 은행가들에게는 파산의 꿈으로 비칠

동화 같은 화려함을 지닌 궁전들에 경의를 표하기도 했어요

 

 

 

그래서요, 그래서요, 더 말해주세요?

 

 

 

오! 아이 같은 머리여!

가장 중요한 것을 잊지 않도록 말하겠소

우리는 어디에서나 보았소, 굳이 찾지 않아도 볼 수 있었죠

운명의 사다리 맨꼭대기에서부터 바닥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끊이지 않는 죄악이 펼쳐지는 지루한 스펙터클을

 

......

 

씁쓸한 지식, 이것이 여행에서 얻은 지식!

세상은, 지루하고 조그마한데, 오늘,

어제, 내일, 언제나 항상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이미지를 보여줄 뿐이다

지루함의 사막에서 만나는 끔찍함의 오아시스

 

......

 

오 죽음이여, 늙은 선장이여, 시간이 됐습니다! 닻을 올리시오!

이 세상은 우리를 지루하게 해요, 오 죽음이여! 출항합시다!

만약 하늘과 바다가 모두 잉크처럼 검다면

우리의 마음만큼은 빛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당신의 독을 부어주세요, 우리가 다시 편안할 수 있도록!

우리는 원합니다, 이 불이 우리의 머리를 태워버릴 만큼,

심연 속으로 뛰어들기를, 지옥이든 천국이든, 중요한가요?

모르는 것의 심연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